Shan Lim, A Conversation with Everything that Dreams

“Painting is to dream the impossible—of wholly privatising one’s experience, ideas, and emotion—and of making it manifest.” This statement by Lee gives me a glimpse of her attitude towards painting and art in general. This dichotomy, pitting rationality and formality against irrationality and sensation, reveals something key about her aesthetic sensibility as an artist. Her declarative confession uncovers a precondition, a motive that reinforces her innate authenticity as an artist. I believe that the artists expose their own subjectivity when they encounter “the moments” of daily life as a series of whole-bodied and wholehearted commitments. To turn one’s own private, intensely interior and “modern” feelings into an artwork demands that the artist reconfigure the component of authenticity. Charles Guignon at South Florida University has stated that wholeheartedness of commitment is pivotal to attaining the authenticity of an artist, but he also warns that such commitment must be clearly distinguished from the self-absorption which threatens such an undertaking; aesthetic reflection on one’s cherished moments should not give way to self-centredness. To me, her attempt to make the “impossible” realm of dreaming possible in painting begins from a conversation. In dialogue, we find a space where the autonomy/idiosyncrasy of the art object may be born—just as in this exhibition, ‘I’ and ‘you, ‘night’ and ‘day’ are freely interchanged with one another, subjectivities slipping in the same way as the title of the exhibition gives way to the title of an individual painting.

She meets people, reads novels, watches movies, eats in restaurants, goes shopping, listens to pop music, surfs the Internet, and after that, she paints. Presumably the artist herself is a subject in such daily acts, a subject she later replaces with the subject of painting. Although the subject is the result of experience and external observation, at the same time it is also narrating an unconscious, internal ‘reality’. Therefore the subject that stands out from the dream-like pictorial space in her painting seems like an arbitrary figure of speech, but this capriciousness corresponds to the artist’s analysis of language as fluid and continually moving, as something discovered by two subjects simultaneously (the subject of painting and the artist herself as subject). To paint like this is to bring language into the light. To name an unnamable metaphor. I would like to propose that Lee’s way of painting offers a new form of contemporary perception, one rich with possibilities for the medium. She is attempting a different kind of expression that projects outwards from a collection of subjective prompts, escaping the reason and authority of traditional ‘still life’ as limited by logic, and relying instead on the thoughtful possibilities of an imagined situation. With this undertaking, she accrues the authentic aesthetics of a painter. In her paintings, the metaphorical images pause their movements, resting a moment between definitions, momentarily escaping the tyrrany of continuously producing meaning.

A dictionary is at once factual – offering precise and authoritative definitions of words, giving limits to language – whilst at the same time it presents us with a mysterious, maze-like construction that delineates the complexity of language’s evolution, overlap and etymology. Due to its paradoxical fixity of meaning combined with the entanglement of the dictionary form, language cannot carry clear or bounded sense as we expect, so Lee has created her own dictionary: alongside her paintings we are presented with her artist’s book “Your, My and Our Dictionaries.” This is structured as a two-channel text: key words the artist encounters in daily life are given definitions from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Online (OED) alongside the artist’s own definitions (Jin’s English Dictionary – JED) as shaped by her experience, thoughts, feelings and painting methodology. Such a linguistic undertaking stems from the artist’s desire to speak for herself, from the position of overt subjectivity implied by the quotation at the beginning of this essay. She has written a dictionary not as the story of her life, or out of a desire to assert some kind of linguistic authority, but rather as a linguistic record that continually articulates the artist herself, sharing her internal aesthetic impulse with the reader. In doing this, she has sought to sidestep rational calculation and instead revel in the sensory enjoyment her art allows: her dictionary is of value precisely because it affirms this subjective, unbounded and confirmed self.

For a long time, painting has been trying to grapple with the words of the world. It has sometimes tried to escape language, and at other times to embody it, but it has always been in contention, in conversation with its unavoidable shadow. By studying language in relation to painting, Lee challenges the painting scene of today, an age of excessive imagery in which the painter’s choice of image on canvas becomes ever more important. Her experience with different media such as novels or the lyrics of Korean Pop music is crucial to her search for an extended sensory language, one fit for contemporary painting and the most up-to-date imagery. In this sense, she finds her critical stance as a balance between object and language, free from the sensory dilemma imposed by the division of painting and writing. Her methodology encompasses a range of linguistic and painterly expressions, developing a practice that is attuned to both language and image. In the exhibition, her authenticity as an artist is evident in her efforts to unite painting with writing as an annotation that is both lyrical and rational. She acts as a subject traveling between painting and writing, thus turning herself into a continually-moving subject. Her experiment is to have a conversation with everything that dreams, to assume license to contemplate one’s life as an artwork that shapes both the artist and the art. This conversation with dreaming things constitutes the artist’s experience, thoughts and feelings which are then activated through the process of painting. These inward-turned questions of dreams are opened out in her practice, released into the company of the audience.

임산, 꿈꾸는 모든 것과의 대화

“회화는 스스로의 경험과 사고와 감정을 온전히 소유하는, 어찌 보면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려는 행위이다”라는 이진한 작가의 진술에서 나는 그녀가 회화를, 더 나아가 예술적 행위 모두를 대하는 태도를 읽는다. 그녀의 선언적 고백은 예술가로서의 내밀한 진정성을 강화하는 조건과 동기를 함의한다. 자신의 심미적 느낌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매개적 과정에 주목하게 만드는 그 짧은 문장은 한편으로, 삶과 예술 사이에서 이성의 형식화와 감각의 비논리적 출현이 서로 엮는 간섭과 은폐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과 다름 아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삶에서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만나는 수많은 어떤 ‘순간’을 드러낼 때 특유의 주관성을 내세운다. 그렇지만 그 철저히 ‘모던’한 개인적인 느낌을 예술작품과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총체적 인간성을 다시 살필 진지함의 요소들을 재구성해야만 한다. 사우스플로리다대학의 철학자 찰스 귀넌(Charles Guignon)은 이러한 의지적 행동이 곧 예술가의 진정성으로 이어진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예술가는 그 내면화에로의 부정적 매몰을 경계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소중한 순간들에 대한 심미적 돌아봄은 자아 발견에 그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예술가가 도전하는 그 “불가능한” 영역의 가능화는 현실이라는 지평에서 다시금 예술의 자유가 열어야 하는 타자와의 대화의 장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진한의 전시에서 ‘나’와 ‘당신’이, ‘밤’과 ‘낮’이, 전시회의 제목과 작품의 제목이 서로 자리를 바꾸듯이 그렇게.

이진한 작가는 사람을 만나고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식점에 가고 쇼핑을 하고 대중가요를 듣고 인터넷 서핑을 한 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물론 작가 자신은 이러한 일상적 행위들의 주어이다. 그런데 그녀 자신은 일상에서의 사건과 관계를 맺는 무척이나 의식적인 주체임에도, 자신을 대신할 새로운 주체를 그림의 주어로 내세운다. 그녀의 그림의 주어는 일차적으로 현실 표면에 대한 경험과 관찰의 결과로 생성되지만, 이와 동시에 현실 이면의 무의식적 층위에 대한 의미론적 판단을 행하고 서술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초현실적 배경에서 부각되는 그녀의 그림 속 기표들은 그 새로운, 또 하나의, 이중적 주어가 세상에서 고른 수사적 표현물일 수 있다. 그것은 갇혀 있는 생명을 꺼내는 일이기도 하고, 이름 붙일 수 없었던 것에 이름을 붙이는 미적 기획이 되기도 하다. 나는 이진한 작가의 이러한 그리기 방식이 곧 회화가 지향할 또 하나의 길이라고 평하고 싶다. 회화의 재현적 숙명과 그것을 둘러싼 억압 구조로부터 벗어나는 그 길은, 회화의 보편적 권력을 불가피하게 반복적으로 세속화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자체에 내포된 모순을 정지된 시간의 화면에 펼쳐 보이는 소박한 시도로부터 출발한다. 화가의 진정한 심미성은 현실의 그럴듯함의 구실이 되는 당연한 지표들의 범주 그 바깥을 향하게 하는 표현의 발견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진한 작가가 이 전시회에서 소개하는 또 하나의 표현 방식은 “너와 나와 우리의 사전”이라는 제목의 영어사전이다. 단어의 뜻을 기술하는 사전은 순수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또 다른 비밀을 만들어내어 의미 세계의 곤경을 창조하는 미로 같은 사물이다. 언어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포섭하지만 결코 그 존재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가가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었다. 사전에 수록된 단어들은 선형적 관계로 설명되지 못하는 일상의 경험과 그것의 시각적 현전 앞에서 작가 자신이 매번 직면하는 개념어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회화에 동원된 비유의 대상 혹은 그 수사적 전략도 언급한다. 이러한 언어적 실천은 궁극적으로 작가가 자기 자신을 말하고자 하는 모종의 욕구에서 비롯할텐데, 그 내면적 필요는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고백과 관계할 것이다. 이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이고 정립된 담화를 확인하기 위함이거나 자신의 문맥에 맞는 언어적 권위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에서 행해지는 미적 충동을 타자에게 털어 놓으며 스스로를 계속 분절해내려는 건넴의 이야기에 가깝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사전은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확인하는 긍정의 가치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욕망과 감각적 매개체의 확장 사이에서 혹여 맞닥뜨릴지 모를 자폐적 의식과의 생산적 단절로도 볼 수 있겠다.

회화가 본격적으로 세속의 말을 전한지 천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때로는 언어의 잔재를 치우려고도 했고 때로는 언어 자체로 다시 환원하고 싶어 했음을 우리는 안다. 이진한 작가는 이미저리의 과잉 시대에서 선별하여 거두어들이는 회화적 현실을 선보이며 여전히 다양한 매개체가 우리 지각에 가져올 가능성을 실험하는 중이다. 말과 사물의 관계를 조정하려하고, 그리기와 글쓰기의 기원에 의해 부과된 감각적 궁지를 벗어나려고도 한다. 이러한 시도 속에서 자기의 심미적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표현의 한계에 대한 조건이 되고, 감수성의 파동이 전한 흔적들을 갈무리하는 강렬한 동기로 발전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은 서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주해로서의 그림과 글의 통일에 대한 노력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매개체 자체의 이름으로 행하는 입장은 어떤 결정의 답보다는 유동하는 비결정의 영역에서 표명된다. 그렇기에 꿈꾸는 모든 것과 나누는 그녀의 예술적 시도는,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통하게 하는 예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술가와 작품 모두를 동요시키는 대화에 가깝다. 요컨대 내면의 다양함을 해방시키기 위한, 자기 고유의 물음들을 현실의 대화 속에 내어 놓는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