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young Lee, Allegory Carved in the Folds of Time and Space (2012)

시공간의 주름에 각인된 알레고리

같은 날 오픈한 이진한과 이이립의 개인전은 여러모로 대조적이면서도 공통점을 보인다. 전자는 미래주의적이고 후자는 고풍스러운데, 둘 다 지금 여기와는 거리를 둔 느낌이다. 밀폐된 곳에서 튀어 나온 기억의 파편들이 <공진>(전시부제) 현상을 일으키는 이이립의 그림은 무너져 내리는 폐허 속에 다양한 알레고리가 잠재해 있다. 모더니즘의 시각에 따르면 억압된 알레고리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복귀’(크레이그 오웬스)됐다고 한다. 지시대상이나 기호로부터 해방된 기표들이 탁 트인 공간 속에서 풍경화되는 이진한의 그림들 역시 <관찰자의 포스트모더니즘:개념의 풍경화>라는 전시 부제를 통해 모더니즘과의 역학 관계에 있는 또 다른 감수성을 펼친다. 특히 그것은 영원한 발생기 상태’(리오타르)를 내포함으로써 포스트모던한 징후를 보인다.

은폐된 채 꽉 묶여 있던 사물화된 기호들이 스르르 몸을 풀기 시작하는 이이립의 그림에서 미세하지만 큰 울림을 낳는 진동이 느껴진다면, 안 보다는 바깥이 연상되는 이진한의 풍경은 지상에 어떤 뿌리 내릴 틈도 없이 공중으로 튕겨 오르며 확산되는 에너지가 있다. 하나가 울증에 가깝다면 다른 하나는 조증에 가까운 정서가 깔려 있는데, 양자는 심리적 사건 속에서 종종 한 현상의 양면으로 간주된다. 물리적으로는, 둘 다 견고한 것이 무너져 내린 것으로부터 구축(또는 해체)된 결과물(또는 흔적들)이다. 이들 작품에 고여 있는, 또는 발산되는 에너지는 동일성에 내재된 순도 대신에 이질적인 것의 부딪힘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존재에게 깊은 상처나 공중분해를 야기할 수 있는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사건이다. 이이립의 경우 닫혀 있던 공간의 돌연한 열개()를 통해, 이진한의 경우 육중한 바로크적 휘장이 젖혀짐으로서 관객은 사건에 동참한다. 사건은 예측 불가능하게 접힌 시공간의 주름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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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표들이 만든 지형도

이이립의 작품을 묵직한 유적지의 양상과 알레고리로 가득한 정물화라고 표현한다면, 이진한의 작품은 어딘가에 얽매임 없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경쾌한 풍경화이다. 형태와 색채는 지기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내밀한 안쪽이 아니라 바깥의 풍경을 암시한다. 바깥에서 물질과 에너지 사이의 호환성은 더욱 높아진다. 작품 <Landscape without Super Mario><Pineapple>에서, 화면 오른쪽에 젖혀진 검은 커튼이 달려 있는 듯한 모습은 다름 작품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그것은 관객의 시선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며, 전체가 붕 떠 있는 가운데 균형을 잡아 준다. 또한 중심 없는 흐름 속에 전체가 유동하는 바로크적 비전에 어울리는 무대장치가 된다. 뜬금없이 나타나 공중으로 휘휘 꼬여 올라가는 굴곡선들은 화면에 활기를 부여하는 요소로, 주름 속에 내장된 에너지를 공간에 방사한다. 지그재그로 꼬인 선들은 음식물로 충전된 창자의 포만감처럼 종횡무진하는 활동 에너지가 될 것이다.

  혼돈스러운 기표들이 자유롭게 떠도는 이진한의 풍경에서, ‘붕 떠 있음은 지상에 자리잡지 못한 박탈감이 아니라 신생의 희열로 가득한 상태다. 아래로 줄줄 흘러내리는 물감의 선들은 멜랑콜리나 중력에 순응한 결과라고 보기보다는 바닥 없는 풍경의 징후에 더 가깝다. 그것은 물질과 에너지의 잉여물처럼 흘러 넘친다. 지거 면으로 추정되는 공감에 나타난 오밀조밀 밀도 있는 색얼룩들은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광대한 시공간을 암시하는 풍경적 요소이다. 마스킹 테이프로 처리된 완벽한 원, 삼각형, 그리고 바둑판 무늬로 이루어진 현대들은 미래주의 풍의 인공물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요소이다.

  작품 Night LightWest Sea Aquarium 에서 밝은 색을 배경으로 속도감 있게 뻗어나간 타원이나 사선들을 비롯한 기하학적 요소는 공간에 고착되지 않는다. 그것은 고정보다는 이동에, 질서보다는 카오스모스에 더 가깝다. 원근법적 선, 어디선가 뻗어 나온 광선 같은 사선들이 자유롭게 배치되고, 그리드 무늬의 구형, 미러볼 같은 형태 등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의 속도감에 따라 빙글거리는 유희적 요소를 부가한다. 이진한희 풍경 역시 이이립처럼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불연속적인 간극에는 묵직한 침묵보다는 열띤 흥분이 가득하다. 그것은 정체감을 통한 수수께끼가 아니라, 유동성이 야기하는 활기이다. 이진한은 물감외에 마스킹 테이프와 반짝이, 스티커 들을 함께 사용함으로서 화면의 불연속성을 강조한다. 불연속성은 모호함을 야기하지만, 동시에 도약을 가능케 한다. 이 풍경은 모든 존재들이 질서 있게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징적 우주와 거리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신학에 근거를 두는 고정된 상징이, 기표와 기의 사이의 거리를 무한정 벌려 나가는 알레고리로 변모한다. 알레고리화는 시간적 요소로 인해 가속화된다.

  A. A 멘딜로우는 예술 작품의 시간적 요소를 추적한 소설과 시간 에서 실재에서 힘으로의 변천을 말한다. 그에 의하면 옛날 사람들은 안정된 우주를, 규칙적인 관계의 체계 속에 유지하는 균형 있는 구성의 존재를 믿었다. 신에 의해 주어진 원리에 입각한 이 조화된 통일성은 우주라는 폐쇄 원을 가득 채웠지만, 이제는 전체적인 우주(Universe) 자체가 분산우주(Multiverse)가 되었다. 모든 단단한 것들이 녹아 내려 생성된 개방된 형태(Gestalt)시간 체험이라는 기이한 무늬가 된다. 고정된 형태와 색채, 그리고 의미는 유동적 과정으로 와해된다. 그렇게 불완전한 단편은 즉각적인 전체로 고양되고, 작가는 새로운 실재의 지형도를 그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