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o Gyoung Jeon, Her Keen Feet (2015)

This is not about works of art, but the story of an artist.

She said she paints a lot of feet. When I look at her paintings again after learning this, she seems to be more conscious than others of the fact that her feet are stepping on something, and standing on somewhere; she must have been a person who thought about herself, and what was not herself, even before she became a person who painted. In her several modes of work, there are two kinds of painting that relate to her feet: paintings of places her feet have touched and found familiar and intimate, and places where her feet have stumbled upon the unfamiliar and unexplored. It feels that she must have cogitated upon moments and fleeting incidents for a long time.

She has thought of times her bare feet have touched another’s. I assume this is a moment when her feet feel intimacy, not like stepping on someone’s foot by mistake—attaching and detaching for a very brief moment—but of laying one’s feet atop and amongst another’s to touch and warm one another. She must have preferred it to putting on socks when the air was chilly or the floor was cold. It is a statistically rarer moment than touching someone’s hand. To rehearse the tender encounter that her feet remember, she repeatedly paints the feet of two people. Their feet are four in number, but as layers of memory pile up, the canvas becomes crowded with several feet, multiplying with memories. The paintings with many feet feel warm in temperature.

Conversely, she has also painted an encounter between feet and an unfamiliar spot. This time what she confronts is not a state, but a situation. Her speedy brushstrokes and the seemingly unplanned, spontaneous paths of the brush combine with improvisatory color choices to show a hasty pursuit of an elusive memory – one that’s slipping away even as its afterthought is tethered to the canvas. However, when you look at the tight and complete painting, you see that it’s not trying to drift away from or deny the unfamiliarity of the moment, but rather to settle it down at some point, to solidify it with firm presses. While unfamiliarity is a feeling that’s difficult to pinpoint, the purpose of painting the situation might not be describing and explaining the facts but rather somehow reconciling the crude sensation itself, rendering that upon which her feet have touched. The blurry and foggy sensation of uncertainty is elucidated in the painting: unfamiliarity is explicitly at stake.

These paintings of situations are warm in temperature as well. It feels like she is still thinking about the feet even when they aren’t present, when the painting elicits the depths of where she had trodden. When I look at the feet lying on the bed it’s as if they are having a nightmare that they’re falling into an abyss, or as I contemplate the feet strolling along the rippling beach, I realise that for her the sensation of the feet plays a crucial role in revisiting situations in the past. The position of the feet anchors her observation. For her, the matter stepped on by the feet is more important than that which is witnessed by the eye.

Using the localised tactility of the feet as the primary mode of observation leaves many of the other sensory organs aside. It is an extremely private and subjective experience and thus often results in records which are not obviously tethered to the real world or apparent facts. Of course such subjectivity is not a problem: every artist observes the world from their own viewpoint, resulting in works shaped by their own methodology and visual sensibility. However, to feel emboldened to trust to one’s subjective observation confers a legitimacy on it: I imagine it must have taken daily commitment and dedication to neatly pile up the pitch-dark unfamiliarity felt in the feet to accrue that sense of legitimacy. The effort to do so must have taken more energy than the act of painting itself. To her, a day would have seemed short with the work of willing subjectivity into legitimacy.

전효경, Her Keen Feet

이것은 작업에 대한 글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발을 많이 그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그의 그림을 다시 보니 그는 그의 발이 무엇을 밟고, 어딘가를 딛고 있다는 사실을 보통 사람들 보다 더 많이 의식하는 듯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기 전부터, 그는 그냥 그런 방식으로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발을 쳐다보며 그린 그림들 중 두 종류의 그림을 꼽을 수 있는데 그의 발이 닿은 곳이 그에게 익숙하고 친밀하다고 느꼈던 자리와 또 발이 만난 낯설었던 곳에 대해 그린 그림이 있다. 그는 그 사건과 순간에 대해 오래 생각한 것이다.

그는 맨발로 다른 사람의 발을 만졌을 때를 생각했다. 나는 그때가 그의 발이 친밀함을 느꼈던 순간이라고 짐작했다. 그것은 실수로 다른 사람의 발을 밟아서 아주 잠깐 서로의 발을 닿았다 떼는 상황이 아니라 가만히 남의 발에 자신의 발을 놓아 발의 온도를 서로 올려주는 상태였다. 그는 추울 때나 바닥이 차가울 때 그렇게 하는 게 양말을 신는 것보다 더 좋았다. 손과 손이 맞닿았을 때보다 훨씬 확률적으로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그는 발이 기억하는 그 살가운 순간을 되뇌기 위해 두 사람의 발을 여러 번 그렸다. 두 사람의 발은 네 개지만,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이 겹겹이 쌓여서 그런지 그는 여러 개의 발로 생각의 화면을 충분히 채운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개의 발을 그린 그림은 그림의 온도가 높다.

그는 반대로 발이 닿은 곳이 낯선 때에도 그림으로 기록했다. 이번에 그가 대면한 것은 상태가 아니고 상황이었다. 그의 속도감 있는 필치와 많이 계획한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즉흥적인 붓의 방향과 색의 선택이 빠르게 사라지는 기억을 잡아두려고 애썼다는 것을 단번에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꽤나 짱짱하게 완성된 것을 보면 그 낯섦을 피하려 하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는 꾹꾹 눌러서 정리한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낯설다는 것은 정리가 잘 되지 않는 감정인데, 이 상황을 그릴 때 사실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그의 발이 디딘 곳의 생경한 느낌 자체를 정리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느낌은 항상 어딘가 안개 낀 것처럼 확실하지 않으니까 그 자체를 뚜렷하게 규명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그 낯섦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상황이 그려진 그림 역시 그 온도가 높았다. 그가 직접적이고 본능적으로 발의 형태를 그리지 않았을 때도 그가 발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그림에서 그의 발이 디디고 있는 곳의 깊이가 느껴졌을 때였다. 한 예로 악몽을 꾸는 침대 위에 있는 발이 심연으로 빠져드는 느낌과 물이 찰랑찰랑한 해변가를 거니는 그림을 볼 때, 발의 감각이 그가 과거의 어떤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발의 자리가 그의 관찰을 도와주었다. 그에게는 발로 무엇을 디디고 있는가의 문제가 눈으로 무엇을 목도할 수 있었는가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 같다.

몸의 많은 감각 기관을 차치하고 발의 국소적인 촉감에 의존한 관찰 방법은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이라 실제 세계나 사실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어떤 형태로 정리될 때가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런 주관적인 것이 그다지 문제되지는 않는다. 모든 작가는 세상을 관찰하고 관찰의 결과물은 각자의 주관적인 방식과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런 관찰의 행위를 하기 위한 당위성과 객관성을 스스로 찾아 내는 것이 더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에게는 그 당위성을 획득하기 위해 발이 느낀 칠흑 같은 낯섦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이 그의 하루 일과 중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임을 짐작해본다. 그 일을 해내는 노력이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힘보다 더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 같다.  아마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하루 하루가 모자랐을 것이다.